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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해설: 사랑 이야기에 담긴 예술가곡의 혁신
    date : 2016-09-28 17:35:47 / writer : 오푸스 관리자 / Add file : gothoni-poster-008.jpg (ip:175.209.1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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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사랑 이야기에 담긴 예술가곡의 혁신

볼프의 <이탈리아 가곡집>과 고토니의 실내악 편곡 버전







 후고 볼프(Hugo Wolf, 1860-1903)는 피아노 음악에서의 쇼팽과 유사하게 가곡이라는 단일 장르의 스페셜리스트로

기억된다. 43년의 생애 동안 300여 편의 곡을 제외하고는 단 한 편의 오페라와 몇 개의 기악음악을 남긴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같은 독일 가곡의 대표자들이 실내악과 교향악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과 비교하면 볼프의 작품 세계는 다소 협소한 인상을 준다. 더욱이 동시대의 말러와 슈트라우스가 가곡을 토대로 삼아 각각 교향곡과 악극에서 빛나는 성취를 보여주었기에 볼프의 업적은 쉬이 그늘에 가려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독일 가곡의 역사에서, 나아가 세기말의 독일 문화사에서 볼프의 가곡은 심대한 의의를 지닌다. 그것은 첫째, 볼프의 가곡이 19세기 낭만가곡의 적통을 이어받아 그 표현가능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는 점, 둘째, 그 동안 가곡 장르에서는 다소 낯설게 느껴졌던 표현양식을 가곡에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현대 가곡의 가능성을 열어젖혔다는 점이다.





저 볼프가 19세기 낭만가곡의 계승자로 평가받는 이유는 시와 음악의 일치라는 가곡 장르의 미학적 대전제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작품 활동 초기 볼프의 롤모델은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이었다. 슈만은 독일가곡사에서 세밀한 시 읽기가 작곡가의 음악적 상상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 작곡가이다. 그가 가곡사에 가져온 혁신은 단순한 심상의 묘사나, 감정의 모방을 뛰어넘어 시인의 숨은 의도와 문학적 수법까지도 적절히 음악화한 데 있다. 이러한 영향 아래 볼프는 슈만처럼 시적 완성도가 뛰어난 명작들을 가곡의 텍스트로 선별하고, 시인의 의도와 뉘앙스 변화를 예민하게 포착해내는 작곡 방식, 간단히 말하면 문학 본위의 작곡 스타일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볼프에게 슈만은 하나의 과정이었다. 그가 습작 시절에 남긴 악보들 중 하나에는 너무 슈만스럽다라는 볼프 자신의 메모가 남아 있다. 슈만의 영향 아래 가곡에 눈을 떴으나 이제는 슈만을 극복해야 함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볼프 가곡의 스타일이 완성되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영향이었다. 볼프를 비롯한 젊은 음악가들은 당대의 블록버스터라 할 만한 바그너의 악극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게르만 신화를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 게임과 경쟁의 요소에 충실한 대중적 플롯, 기독교와 낭만주의라는 익숙한 문화맥락, 좌중을 압도하는 엄청난 규모, 뛰어난 개성을 보여주는 캐릭터들과 신화적 아우라를 덧입혀주는 음향,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악과 극이 하나의 완결된 총체를 이루도록 구성된 극작 및 작곡기술 등 바그너는 그 자체로 현대 예술의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바그너의 종합예술작품에 깊이 경도된 볼프는 이제 바그너의 성악 기법, 즉 낭송조에 착안하여 새로운 가곡 양식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낭송조란 노래다운 선율인 아리아와 보고적인 낭독인 레치타티보가 서로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통합된 형태의 가창법을 말한다. 바그너가 낭송조를 통해 원래 의도한 효과는 노래 선율과 언어적 음조 사이의 격차를 없앰으로서 가창과 노래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연기와 음악은 서로 융합되어 전체 극 역시 중단되는 일 없이 하나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바그너는 악극을 하나의 총체로 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낭송조를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볼프는 바그너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낭송조를 활용한다. 이 점이 아마도 볼프 가곡의 최대 혁신 지점일 것이다. 바그너의 낭송조가 음악적 긴장감을 극대화하고 극의 규모를 크게 하는 확장적인 방향으로 활용되었다면, 볼프의 낭송조는 시어의 섬세한 어감들을 서로 차별화시키는 방향, 다시 말해 보다 더 미시적이고 심리적인 방향으로 활용된다. 바그너 악극이라는 거대한 예술작품의 구성 원리가 정밀하고 공교한 예술가곡에도 세련되게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하여 볼프는 형식이나 선율이 지배하던 이전 시기의 가곡과는 차별화되는 낭송조 가곡의 창시자가 된다. 악곡의 형식이 중심이 된 가곡들 그 대표적인 예는 유절가곡이다 은 반복되는 음악적 형식 때문에 시의 내용 변화를 적절히 음악으로 옮기기 어렵다. 선율 중심의 가곡은 보다 아름다운 가창을 위해 자연스러운 언어의 음조와 미묘한 시적 뉘앙스를 희생시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낭송조 가곡은 때로는 선율적으로, 때로는 보고적으로 변화하면서 시적 화자의 심리 변화를 융통성 있게 담아낼 수 있다.

이러한 혁신은 세기말의 시대적 맥락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사회가 점차 세분화, 전문화, 다층화되면서 시민사회를 관류하는 시민적 정서 역시 과거보다 더 복합적인 양상을 띄게 되었다. 때문에 하나의 전형적이고 순수한 감정보다는 서로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감정이 하나의 맥락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순수한 기쁨, 순수한 슬픔보다는 무엇인가가 많이 섞인 기쁨, 슬픔들이 더 호소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뭔가 뒤가 개운하지 않은 기쁨이라든지, 엄살을 잔뜩 부리는 슬픔이라든지, 갑자기 내 주위에 생겨난 낯선 이웃들에게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감정적 전략들이 일상적인 차원에서까지 더 보편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결국 볼프의 낭송조, 그리고 낭송가곡은 이러한 복합 감정들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적절한 도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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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의 <이탈리아 가곡집 Italienisches Liederbuch>은 앞서 언급한 낭송조가 가장 원숙하게 활용된 작품으로 대부분의 노래들은 극히 세밀하게 다듬어진 정교한 미니어처이다. 볼프가 사용한 텍스트는 열정적인 사랑고백에서부터 가벼운 장난질, 허세 부리기, 질투, 사랑싸움, 슬픔 등 그야말로 사랑의 다양한 감정들을 포착하고있다. 그런데 이같은 감정들은 고정되고 무조건적 것이 아니라 늘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정서로서 작품 내에서 미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러한 가벼운 내용은 다시 작고 장식적인 형식, 미묘한 변화를 보여주는 낭송조의 흐름과도 상응한다. 때문에 이 가곡집을 듣는 이들은 복합적인 사랑의 감정, 즉 최고의 환희와 최악의 나락, 진지함과 죽 끓는 변덕을 유쾌한 기분으로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사랑의 다양한 이미지들은 사랑의 신실함을 강조하는 브람스류의 독일적 사랑 관념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사랑은 엄숙하고 진실하며 깊은 내적 갈등을 수반하는 변치 않는 사랑이 아니라 늘 변하고 늘 후회하고 늘 새로운 열정을 분출해내는 자유분방한사랑이다. 그런 면에서 볼프의 이 작품은 이탈리아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작품은 이탈리아적이지 않다. 이 가곡집의 텍스트는 주로 이탈리아의 구전 민요를 그 원전으로 하고 있는데 이를 탁월한 번역 시인인 파울 하이제(Paul Heyse, 1830-1913)가 독역(사실은 번안에 가까움)했다. 그런데 에릭 샘스에 의하면 하이제는 번역 과정에서 원래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시골 지역에서 불려지던 민속적인 리스페토(rispetto, 8-10행에 10, 11음절을 가지는 대화투의 사랑시)들을 독일 도시의 부르주아 계층의 취향에 걸맞게 다듬었다. 소박하고 반복성이 강한 내용을 보다 상징성과 다면성을 가지도록 수정하여 좀더 교육받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고자 한 것이다. 볼프는 이탈리아어 원작을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고 하이제의 독역시만을 읽고 작곡에 임했다.

때문에 <이탈리아 가곡집>에는 이탈리아 시골의 민요적 정서가 아닌 세기말 부르주아의 도시적 정서가 보다 전면에 드러나 있다. 이러한 점은 볼프가 민요적 이상을 강조했던 브람스의 가곡에 공공연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는 점, 또한 그가 가곡 작곡에 임할 때 교양 시민 계급의 문학적, 예술적 취향을 민감하게 반영했다는 점 구스타프 말러는 그 반대의 경우이다 에 의해 뒷받침 된다. 아마도 볼프는 그런 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는지도 모른다. 따뜻한 심장이 저 남쪽의 가장 어린 아이들의 자그마한 몸 속에서 박동치고 있다네. 하지만 그들은 그 외양에도 불구하고 저희들 속에 있는 독일적 뿌리를 부정할 수 없을 거야. 물론이지, 제 아무리 이탈리아의 태양이 그들을 비춘다 해도 그들의 심장은 독일어로 뛰고 있거든.” 그러므로 볼프는 <이탈리아 가곡집>에서 소재와 외적인 주제의식은 이탈리아에서 가져왔으나 그것을 다룰 때는 독일적 방식을 취했다. 서로 이질적인 문화를 이종교배하여 새로운 개성을 창출해내는 혼종적 특성이 이 작품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결국 <이탈리아 가곡집>은 낭송조라는 새로운 방식이 보여주는 가곡사적 혁신, 사랑이라는 보편 감정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대중성, 서로 다른 문화 특성을 성공적으로 종합해낸 현대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독일 연가곡의 측면에서도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사실 볼프의 원작은 곡의 배치 순서상 논리적 개연성을 지니는 단일 줄거리를 의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개별 곡들의 대화적인 성격과 그 속에서 직, 간접적으로 제시되는 사건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 나눠 맡고 있는 일종의 롤플레잉 상황은 이 가곡집을 단순한 모음집이 아니라 연가곡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번 공연은 저명한 가곡 피아니스트이자 독일 슈투트가르트 후고 볼프 아카데미의 예술감독인 하르트무트 횔(Hartmut Höll)이 전체의 내용과 음악적 얼개를 고려하여 새롭게 구성한 순서를 따르고 있다. 그 결과 전체 46개의 가곡은 각각 오프닝남자의 사랑고백여자의 거절과 밀당(!) – 사랑에 빠진 두 사람 가족들로 인한 다툼 중간의 화해 남자의 한눈 팔기 여자의 맞불 최종적인 화해와 대단원으로 이어지는 플롯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플롯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이야기로서 단순 모음곡의 형태보다 청중들에게 더 많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구성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독일 연가곡의 전통에서 볼 때 낯설지 않은 시도이다. 연가곡이란 본래 가정이나 살롱에서 연주되던 가곡 장르를 대규모 콘서트홀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변모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즉 개별 서정시들을 아우르는 하나의 서사적 흐름을 만들어 반복 공연의 가능성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한편 이번 공연에서 연주되는 <이탈리아 가곡집>은 핀란드 태생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아니스트인

랄프 고토니(Ralf Gothóni) 2002년과 2003년에 걸쳐 완성한 실내악 편곡 버전이다. 이 편곡 버전은 편곡자 자신의 지휘로 슈투트가르트와 뮌헨에서 초연되었는데 당시 솔로는 저명한 메조소프라노 미츠코 시라이와 테너 크리스토퍼 프레가디엔이었다. 고토니의 실내악 버전은 현악 5중주와 관악 6중주(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트럼펫) 그리고 하프로 구성되어 있다. 편곡자는 이러한 조합이 볼프 원작의 색채와 두 젊은 남녀 화자의 풍부한 감정 및 다면적인 성격을 표현하기 위한 최적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밝히고 있다. 동시에 편곡자는 원곡의 구조를 최대한 유지하여 볼프 원작의 의도와 해석의 가능성을 그대로 지키고자 하였다고 덧붙인다. 피아노 가곡의 관현악 편곡은 이미 볼프 당대에 성행하였던 현상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큰 관현악 편성의 경우 시어의 섬세한 뉘앙스나 성악과 기악 간의 긴밀한 호흡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더 작은 규모의 앙상블 가곡은 가곡 본연의 장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채로운 음악적 표현이 가능한, 대안적 시도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처럼, 가곡 예술의 정수를 보다 쉽고 새롭게 소개하는 창의적인 공연이 앞으로도 국내 무대에 지속적으로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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